최근 몇 년, 토요카와 에츠시가 자신에게 내걸고 있는 테마는 ‘첫 사람과 일 할 기회는 잡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작년에도 유키사다 이사오(북의 영년)나 미이케 다케시(요괴대전쟁)를 비롯해 다양한 감독과의 첫 콤비작이 몇 작품이나 공개되었지만 그 기세는 올해도 멈추지 않는다. 연기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실한 때를 맞이한 40대에 접어들어 그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넓히려는 듯하다. 여기서는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신작 [부드러운 생활]을 중심으로 [일본침몰], [훌라걸스], [LOFTロフト]등 공개대기작이 계속되는 토요카와 에츠시의 ‘현재’에 다가가 보았다.
[부드러운 생활]은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작가 이토야마 아키코의 [잇츠 온리 토크]를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 히로키 감독에게 있어 아라이 하루히코 각본, 테라지마 시노부 주연이란 점은 각종 영화상에서 극찬 받았던 [바이브레이터]의 트리오가 재결집한 작품이란 것이다. 여기에 토요카와 에츠시가 연기하는 건 테라지마가 분한 여주인공 다치바나 유코의 사촌 쇼이치 역.
히로키씨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던 것도 물론이지만 처음에 받았던 아라이씨의 시나리오가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세계관이 애매하다고 할까, 행간 같은 걸 많이 갖고 있는 느낌이라서 완벽하게 정해져 있고 모든 게 확실한 게 아니라, 어딘가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오는 걸 좋아하기에 아라이씨의 시나리오는 읽는 것만으로 영상이 보이는 듯 하는 느낌의 책이었어요.
이 영화는 부모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조울병을 앓아 일류기업 캐리어우먼의 길을 버리고 그리운 변두리의 정취가 풍기는 가마타(蒲田)에 정착해 사는 유코가 우울증에 걸린 야쿠자, 취미가 고상한 치한, 발기부전의 도의회의원후보등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코의 고향, 후쿠오카로부터 훌쩍 차를 타고 찾아오는 쇼이치는 작품의 중심이 되는 유코의 상대역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전원이 다 그렇지만 나쁜 녀석은 없고 마음속에 여러 가지 고민들을 안고 있습니다. 쇼이치도 어딘가 확실히 하지 않고 잘 알 수 없는 녀석이긴 해도 나쁜 놈은 아니에요. 그 근처의 느슨함이 굉장히 영화적이고 좋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첫 등장신은 유코 부모의 제사입니다만 에모토 아키라씨가 연기하는 나(쇼이치)의 아버지가 유코에게 ‘우리 집 바보가 (공항)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라고 시작부터 소개되는 쪽이 바보라서...(웃음)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캐릭터를 깊게 생각했다기보다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쓰여진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책에 편승해 자연스럽게 연기한 느낌이 듭니다. 하카타 사투리라는 강력한 무기도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캐릭터는 꽤 전해진다고 느꼈어요. 이런 방언은 기억하는 게 물리적으로 힘들지만 역을 표현하는 점에선 든든한 실마리가 됩니다. 다만 쇼이치는 사회성이 결핍된 인간임엔 틀림없기 때문에 그 점이 다소 이상한 형태라도 매력적이게 보이도록 의식했습니다.
그 발언만으론 각본대로 연기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의 연기가 인간으로서 ‘본심’의 부분을 보기 어려운 쇼이치에게 리얼한 존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엔 틀림없다.
히로키씨는 배우에게 다소 ‘생(生)’의 부분을 요구한다고 할까. 다큐멘터리적인 수법이 있는데 역할의 감정과 배우의 감정, 양쪽 모두 끌어내 믹스시켜 연출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굉장히 즐거웠어요. 스스로 특별하게 어떠한 감정을 표현하자란 것 없이 연기하는 공간에 몸을 맡기면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솟아나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유코역의 테라지마 시노부와 그, 두 사람의 연기. 게다가 각 신은 길고 차분히 찍혀져있다.
크랭크 인 전에는 히로키씨와 캐릭터라던가 전체적인 것을 이야기 했었지만 현장에 들어가고부터는 굉장히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쇼이치는 유코의 리액션 연기에 의해 점점 캐릭터가 만들어져가는 역할이라서 쇼이치 자신의 신념 등은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유코와의 관계성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정(正)의 부분도 부(負)의 부분도 끌어안아서 두 사람의 관계성이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을지 그 부분이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유코와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쇼이치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 시작되게 한다기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신이던지 그를 지켜보게 하는 게 제 일이었단 생각이 드네요. 무대가 되는 가마타의 거리나 경마장, 가라오케박스같이 유코와 함께 보내는 영화적 공간속에서 기분 좋게 쇼이치가 서있으면 캐릭터는 관객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유코는 조울병이 있어 감정의 기복이 심해 점점 쇼이치에게 에너지를 부딪쳐오는 역할. 그것을 연기하는 테라지마 시노부 파워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테라지마씨는 연기를 할 때엔 집중하는 사람이에요. 휴식 중에는 과민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카메라가 돌면 역할에 완전히 몰입했어요. 연기를 할 때에는 역할 속의 관계대로 조심조심 대하면서도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으로 했습니다.
영화의 중반에는 쇼이치와 유코가 단순한 사촌이 아닌 과거에 한번 육체관계가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코의 방에서 더부살이 하며 나날이 변화하는 그녀의 감정에 맞춰 식사를 챙겨주는 쇼이치는 어느 여성에게 있어서나 결핍을 메워주는 이상적인 상냥한 남성으로 보일 것이다. 거기서부터 깊이 파고들어 과연 두 사람 사이에 지금도 연애감정이 있다고 그는 파악한 것일까?
쇼이치로 볼 때 유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연애감정을 갖고 있는지는 굉장히 애매합니다. 영화적으로 유코 옆에서 본 쇼이치와 쇼이치 옆에서 본 유코라는 건 있지만, 두 사람은 분명 비슷한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이 가끔 찰나적으로 보여질 때에 관객은 두 사람을 따뜻한 눈으로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자신은 유코에게 상냥하게 하는 일련의 부분을 연기할 때, 쇼이치는 유코를 좋아한다는걸 전혀 의식하지 않고 연기했었습니다. 그 점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래서일까 여기서의 쇼이치와 유코는 사촌이자 연인이며 성별을 뛰어넘은 친구로도 보인다. 이 무언가에 한정되지 않는 관계가 타이틀대로 ‘부드럽게’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라 보고 있을 때 매우 사랑스럽게 생각되어진다.
어딘가 이 두 사람에게는 실재감이 있고 옛날이야기 같아서 바로 그 근처에서 함께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아마 히로키씨의 연출이나 카메라 워크도 그런 것을 고려해서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과 관객과의 거리감을 굉장히 계산해서 만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작품인만큼 두 사람의 관계성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고려해 촬영은 대부분 순차적으로 행해졌다.
마지막에 차안에서 테라지마씨와 키스하는 장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둘이서 그런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관계성이 이미 형성돼 있었으니까요. 그 전에 쇼이치가 유코를 때리는 장면은 둘이 했던 것 중에서도 가장 긴 신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꽤 여러 번 테이크를 거듭했어요. 정말로 수차례 테라지마씨를 때렸습니다만 ‘어쩔 수 없자나, 일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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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게 사젠, 백만냥의 항아리]의 단게 사젠, [요괴대전쟁]의 마인, 가토 야스노리등 과거에는 작정하고 명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던 토요카와 에츠시지만 이번의 쇼이치는 다양한 것을 정하지 않고 배우가 가지는 인간성에 의해서 캐릭터를 느끼게 하는 정반대의 극(對極)에 있는 역할이다.
연기를 하는 즐거움이란 의미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어떻다라고 말할 수 없어요. 다만 연기하는 나로선 이번 역 쪽이 즐거웠다고 할까. 스스로도 예기치 못한 일이 현장에서 계속 생기므로 촬영전과 크랭크 업한 후에 자신의 이미지가 완전히 틀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히로키씨나 테라지마씨와도 처음부터 잘 맞는다고 느꼈는데 예상대로 그랬던 점이 좋았네요. 역시 사람이나 작품과도 궁합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완성한 작품을 보고 ‘좋은 영화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실제 이 영화는 올해의 일본영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는 현대의 스트레스 많은 일본에 사는 인간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고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