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수화가 꽤 많이 늘었죠. 공부 했어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인파 속에서 수화를 하는 히로코는 많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했다.
무의식중에 흠칫하는 중년남성과,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돌려 버리는 젊은 여성들.
주변 분위기를 살핀 코지가 가만히 히로코의 손을 붙잡고 수화를 그만두게 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건널목 근처에 가자, 히로코는 물었다.
[왜 그래요?]
[너마저 귀가 안 들린다고 생각할거야.]
[‘나까지 들을 수 없다’라니.... 별로 상관없어요.]
[좋지 않아. 웃음거리가 된다구.]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신경이 안 쓰인다는 건, 넌 사실 귀가 들리기 때문이야!]
코지의 말은 히로코에게 정말 쇼크였다.
[그렇게.... 그렇게 달라요?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게.... 나랑 당신은 그렇게 다른 건가요!?]
히로코는 필사적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더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 알고 싶다구요!]
[나는 너의 호기심이나 센티멘탈의 도구가 아니야, 내 화상자국도 너와는 관계없어!]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호기심이 아니에요, 동정도 아니라구요. 나는 당신을 좋아하니까, 좋아해서...]
정신이 들고 보니, 히로코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코지는 그 눈물을 살짝 손으로 닦아 내려했지만, 히로코에게 조용히 거절당해버렸다.
[우는 거 아니에요.... 안 울어요.]
띄엄띄엄 중얼거리는 히로코의 모습은 코지의 가슴을 조여 왔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강한 마음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한 점의 숨김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히로코.
지금까지는 그녀의 일편단심에 당황한 나머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 스스로 그녀에게 마음을 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지는 이제야 겨우 히로코의 한결같은 마음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코지는 히로코를 가슴에 듬쑥 끌어안았다.
히로코의 눈물은 코지의 무색투명한 마음에 하늘색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넓게 퍼져 가고 있었다.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시오리의 시선 따위는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